놓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경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저 느끼고, 목격하며, 보고, 만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원하신다. (중략)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할 때 그분을 더 알기를 구하는가, 아니면 그저 더 많은 경험을 하기만 원하는가? p.80-81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부재가 지긋지긋해 임재를 조작한다. (중략) 조작된 임재는 실제로 부재다. 우리가 주장하고 느끼고 붙잡는 임재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조작된 것인가? 우리가 경험하는 임재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부재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려고 종교 실험실에서 만든 인위적 임재인가? 얼마나 많은 거짓 임재가 진짜 조급함의 결과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형상으로 조작하는 대신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 p.103-105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인데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끌어내리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중심되시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려고 예배를 가로챘다. 하나님의 탁월하심이 아니라 우리의 체험이 가장 주목받는다. 복음이 아니라 우리의 전율에 초점이 집중된다. 예배가 더는 예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체험에 관한 것이 되었다. p.176
우리는 어떤 영광의 무게에 반드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중략) 아픔은 우리를 임재에 대해 준비시킨다. 고통은 우리를 임재에 대해 준비시킨다.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길을 닦는다. p.209
하나님은 지금도 일반적 임재로 우리에게 항상 임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방식으로는 부재하실 때라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임재하고 계신다. 우리의 삶에는, 설령 적더라도 좋은 것들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의 공급자이시다. p.262
|프롤로그
하나님의 임재(臨在, presence)는 혼란스럽다. 확신컨대,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물었으리라. 하나님의 임재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면서 동시에 모든 곳에 계실 수 있는가?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임재하신다면, 왜 세상에 고통이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는 임재하면서 불신자들에게는 부재(不在)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면, 왜 그렇게 자주 내게서 멀게 느껴지는가? 하나님의 임재란 무슨 뜻인가? 반대로, 하나님의 부재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허용하기나 하는가?
세상 영성은 말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믿음뿐이라고. 그러나 이런 판에 박힌 얘기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기 때문에 우리 마음과 생각이 자주 소란과 의심과 수치심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 받는 조언과 자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임재를 재차 단언하는 데 그친다. 이것들이 유익하고 도움이 되며,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왜 우리는 하나님의 부재 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부재를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禁忌)라서가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의 부재는 성경에서 금기시된 주제가 아니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처럼, 나도 오랫동안 하나님을 아주 멀게만 느꼈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임재는 기껏해야 희미해 보였고, 심하게는 농담처럼 들렸다. 그런데도 이에 관해 내게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때는 이런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겪고 있는 일에 공감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도 하나님의 부재를 너무 깊이 겪고 있어서 내게 도움이 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기도할 때마다 말 그대로 벽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성경을 펼 때마다 하얀 것은 종이이고 까만 것은 글자였다. 교회에 갈 때마다 의식과 전통밖에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했지만, 도무지 하나님을 직접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이 말을 믿기 어려웠다.
긴 시간이 흘러, 부재의 계절이 지나갔다. 그것은 하룻밤 사이에 지나가지 않았다. 천천히 한 걸음씩, 태양이 지평선 위로 조금씩 솟아오르듯 그렇게 지나갔다. 대학 졸업 후,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 개념에 다시 마음이 끌려서 성경이 하나님의 부재를 어떻게 말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재로 가득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책인데도 하나님의 부재를 많이 말한다. 곧바로 깨달았다. 성경이 하나님의 부재를 거의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주 말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에 관한 연구의 범위를 성경 밖으로 확대했고, 거기서 발견한 것에 훨씬 더 놀랐다. 사실, 성경 밖에서 거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신학 진영에서 이 개념을 ‘하나님의 부재’(Divine Absence)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신학적 필요 때문에 이와 관련된 글을 쓴 그리스도인보다 문학 소재로서 이와 관 련된 글을 쓴 비그리스도인이 많아 보였다.
나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담부터 모세까지, 시편부터 선지서까지, 심지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에게서까지, 하나님의 부재와 관련된 언어와 실제를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부재하실 수 있고, 성경 전체에서 수없이 부재하셨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아무도 이것을 말하지 않았을까? 너무 많은 사람이 자주 하나님을 멀게 느낀다.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부재에 관해 뭐라 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주제를 혼자 4년간 연구한 끝에 책을 쓰게 되었다. 나의 친구이자 저작권 대리자가 된 멋진 여성이 책을 쓸 만한 주제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나님의 부재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잘 안다. 나는 이른바 결손 가정에서 자라며 부재의 아픔과 상실의 절망을 겪었다. 그래서 하 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단언하면서도 방문을 잠그고 벽을 향해 울부짖듯 기도하며, 그 기도 중 얼마는 벽을 뚫고 하나님의 귀에 닿기를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하나님이 멀기만 한 느낌으로 융단 폭격을 받을 때 그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입에 발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그러므로 내가 지나온 여정을 밟고 있는 당신이 나의 동행을 허락한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부재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어떻게 이러한 진실이 실제로 그분의 임재를 더 달콤하게 맛보고 더 갈망하게 하는지 보여주겠다.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때문임을 보여주겠다. 왜 하나님께서 부재하셔야 하는지, 어째서 하나님의 부재가 실제로 은혜의 한 형태인지 함께 돌아보겠다.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임재하시지만 어떻게 우리 주위에서 부재하시는 것이 가능한지 보여주겠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그분이 더 멀게 느껴지는지 알려주겠다. 하나님께서 임재와 부재를 활용해 세상 사건들을 어떻게 지휘하시는지, 우리에게서 갈망과 사랑을 어떻게 더 끌어내시는지 말해주겠다.
우리의 교회와 예배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를 어떻게 적절히 이해할 수 있는지 볼 것이다. 하나님의 부재가 영적 어둠뿐 아니라 아픔 및 고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음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재를 이기는 동시에 하나님의 부재를 더 경험하게 하는지 보여주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방식으로는 부재하시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임재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 전체에서 발견할 신비이다. 왜 하나님은 여기 계시지 않으며, 절대 떠나지 않으시는가? 이 여정을 통해, 당신의 생각과 마음에서 장애물이 걷히고, 하나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멀지만 당신이 상상조차 못 할 만큼 가까이 계심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