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한국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은 없었습니다. 교회를 개혁할 목적으로 쓴 책들은 숱하게 많았지만, 정확하게 개혁교회를 겨냥해서 그것도 일인칭 시점으로 우리의 죄를 우리가 직접 고백하는 책은 제가 아는 한 처음입니다. 여기에 이 책만의 특별한 고유성이 있습니다. 이 책은 따로 언급할 만한 중요한 특징들이 많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제가 각별히 더욱 의미 있게 생각한 다섯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책은 병든 개혁주의자들의 치부를 그야말로 낱낱이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물론 이전에도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회개와 교회 개혁을 외친 책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혁주의자들 자신의 현실을 진단함에 있어서는 언제나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이었습니다. 분명한 죄의 실상은 밝히지 않고 개혁을 위한 구호만 가득했습니다. 반면 이 책은 우리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 책의 독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의 추악한 민낯을 직면하고, 아마도 깊은 충격을 받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죄를 가감 없이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죄가 없는 곳에는 은혜 또한 있을 수 없다는 저자의 진지한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라 은혜를 구하고자 함입니다.
둘째,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체험과 고뇌의 산물입니다. 저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이 책 저 책을 한가하게 뒤적이며 그저 차가운 머리로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은 긴 세월 동안 저자가 여러 개혁주의 공동체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구체적인 문제와 사례들을 붙들고 씨름한 후 얻은 결과물입니다. 행간 곳곳에 저자의 실존이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담론은 사막의 신기루 같은 실체 없는 관념의 건축물이 아니라 직접 피부로 느껴질 만큼 아주 생생하고 구체적입니다. 저자의 흡인력 있는 서사를 좇다 보면 마치 사건의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옆에서 직접 듣는 양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하게 됩니다. 이렇듯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주장은, 한국 개혁주의자들의 현실태(Energeia)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책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이런 역설적 풍요로움은,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을 일평생의 숙제로 삼고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담금질한 이가 아니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이 책은 개혁주의자가 회개해야 할 목록 중에서 특별히 교회 정치 및 치리의 문제를 가장 중심적인 주제로 부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여기서 발생한 심각한 오류가 나머지 죄악들을 배태하는 근본 동인(動因)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자가 교회 정치 문제를 목차의 첫머리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얼개와 구조가 논리적으로 상당히 짜임새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개혁주의적 시각에서 한국 교회의 개혁을 다루었던 기존의 책들은, 다른 교리적 오류들은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성경적인 교회 정치가 실행되지 않는 개혁주의의 현실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일부 목회자들이 그 교리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오해해 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적인 교회 정치가 실제로 시행되면 자칫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파이브 솔라’(Five Sola)나 ‘튤립’(TULIP) 등의 교리는 자신의 권위에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지만, 성경적인 교회 정치를 성도들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자칫 목회자 자신이 그동안 아무 제한 없이 누려왔던 제왕적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리를 가르치더라도 자신의 기득권에 손상을 주지 않는 것들만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적 교회 정치의 실행에 대한 일부 목회자들의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어디까지나 이 교리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교회 정치와 치리에 대한 교리는 어느 특정한 직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을 진정한 의미에서 지키고 보호해 주는 가르침입니다. 저자는 이 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예시합니다. 그동안 개혁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성경적 교회 정치의 충실한 시행에 별로 관심이 없던 분들에게는 이 책이 신앙적 전회(Kehre)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넷째, 이 책은 그대로 암기해서 가슴에 새기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저자의 오랜 성찰의 열매를 이따금씩 한 문장 속에 응축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문장 하나는 인간의 삶을 감화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갈피 갈피에서 이런 ‘제 인생의 문장’을 여럿 만났습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분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시리라 기대합니다.
다섯째, 이 책은 참된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를 아는 데도 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설명할 목적으로 저술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군데군데에서 참된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를 병든 개혁주의자들의 죄의 실상과 대조시키면서 매우 정확하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전통에 갓 입문한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평소 개혁주의를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했던 독자들 역시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개혁주의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이고 협소한 것이었는지를 인식하게끔 만듭니다. 독자들은 광대한 개혁신앙의 유산 중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거나 잘 몰랐던 가르침들을 새롭게 깨닫고 누리는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
세상에 완전한 책은 없습니다. 그 점은 이 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느끼는 유일한 아쉬움은, 저자가 좀 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저로서는 근래 한국의 개혁주의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교회와 세속 정치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세속 정치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오늘날 개혁주의 공동체는 서로를 비난하며 정말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우리가 서로를 정죄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찢는 매우 심각한 죄입니다. 개혁주의자들 내부의 이런 파괴적인 분열을 보고 사탄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는 우리가 마땅히 회개해야 할 죄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결코 성경의 가르침과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공공선을 위한 교회의 윤리적 실천을 특정 정당의 이익에 종속시켜서도 곤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상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특정한 이념이나 정치 세력이 상대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을 잘 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기독교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정치 세력을 절대화해서 마치 하나님처럼 높이는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속 정치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최근 한국의 개혁주의자들은 서로를 맹렬히 공격하는 분열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가 이 중대한 주제를 이 책에서 충분히 다루어 주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책에서 누락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자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주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유의 결과물이 앞으로 별도의 책으로 출간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우
제게는 약간의 걱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만한 개혁주의자들이 이 책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책에 담긴 회개의 메시지마저 자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나는 이제 개혁주의자들의 문제점을 다 파악했다’는 지적 만족을 위한 노리개이자 자고(自高)의 근거로 악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분들도 그런 교묘한 죄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스토트 신부님은 성경 지식조차도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선한 것조차 자신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왜곡하고 악용하는 인간의 깊은 죄성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날카롭고 두려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자신, 즉 개혁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쓰였습니다. 저는 이 책의 매 행간에서 개혁주의를 사랑하는, 참된 교회를 열망하는 저자의 뜨거운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 또한 저자의 이런 마음을 매 순간 발견하게 되실 거라 믿습니다. 부디 이 책이 저자의 진심을 좇아 널리 읽히길 기도합니다.
- 김성환 성도
글을 열며
개혁주의의 가장 큰 문제 - 개혁주의자
제가 배우고 알고 믿는 바에 따르면, 개혁주의는 참으로 성경적인 신학이자 신앙입니다. 어딘가에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적 기독교의 별명이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의 교리입니다. 개혁주의는 성경을 따르고 성경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방향에서 나오는 모든 마음과 태도가 개혁주의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유산이 우리 선조들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유산을 힘 있게 지키고 전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는 개혁주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개혁주의’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답답하고 고약하고 매정하고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이미지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사람들이 개혁주의로 나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개혁주의자들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한 말에 자괴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일부라고 말하기에는 적지 않은 개혁주의자들이 실제로 덕이 안 되는 태도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를 파괴합니다. 많은 개혁주의자가 교리를 강조하고 바르게 아는 것을 역설하지만 삶은 말하는 것에 비해 못 미칠 때가 많습니다. 태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네, 우리는 실제 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것만, 우리가 순종하고 싶은 것만, 우리 소견에 옳은 것만 행하는 듯 보입니다.
우려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책에서 개혁주의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와 아름답고 복된 교회의 모습도 증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개혁주의의 민얼굴을 보려고 합니다. 이 책에는 괴롭고 비통해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꾸미지 않고 피하지 않고, 말씀 앞에, 진리의 거울 앞에 함께 서기 원합니다. 은혜는 죄 없이는 말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죄 없는 곳에는 은혜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이야기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은혜를 바라보고자 함입니다.
저는 이 책의 일차 독자를 저와 같은 개혁주의자들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따라서 개혁주의라는 단어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이 책이 개혁주의자만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개혁주의자가 아니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가 함께 고민하고 나눌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신실한 개혁주의자가 되고 싶은 제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또 호소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기에 대상이 제한되어 보일 뿐이지, 저는 사실 모든 성도님과 진지하게 나누길 원합니다.
사실 저는 개혁주의, 개혁신학이라는 말보다는 개혁신앙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예 그런 용어 자체를 쓰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용어를 쓰지 않고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말한다거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꼭 써야 할 때도 있지요. 아무튼 이 책에서 저는 ‘개혁주의자’라는 단어와 맞추기 위하여 주로 ‘개혁주의’라는 표현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개혁신학 또는 개혁신앙이라는 단어와 구분 짓지 않고 교차하여 쓰기도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을 이 책의 중심 독자로 삼고 이야기하기에 이 책에서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혹 잘 모르시거나 궁금하신 분들은 개혁주의의 정의와 역사, 방향 등에 관한 유익한 책들이 많이 있으니 목사님이나 동료 성도님들께 추천을 받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책 끝에서 몇 권의 책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심 독자를 개혁주의자로 삼았지만, 개혁주의자가 아닌 분들도 함께 고민할 거리가 많습니다. 개혁주의를 오해하시는 분들, 개혁주의에 상처가 많으신 분들, 개혁주의를 싫어하시는 분들께 전하는 내용도 있으니 같이 읽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개혁주의는 은혜의 교리요 은혜의 신학입니다. 개혁주의는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입니다. 그래서 참된 개혁주의는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선조들처럼 우리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될수록 그렇습니다. 우리는 개혁주의가 아닌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혁주의를 사랑합니다.
정말이지 개혁주의 신학만큼 하나님을 영광스럽고 진실하게 보여주는 신학은 없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개혁주의가 성경을 성경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개혁주의는 빈곤하지 않고 풍성하며, 획일적이지 않으면서 통일성이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개혁주의 자체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교회를 가장 힘 있게 해왔던 개혁주의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불순종과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그리고 우리의 오만함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 개혁주의자들이 서 있는 현실부터 정직하게 보겠습니다.